A!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을 어떻게 위로할까 생각하다가 가장 좋은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니 쓰지 않고는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몇 날 며칠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오늘에야 무엇에 이끌리듯 이렇게 펜을 듭니다.

​그런데요 A!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내 마음이, 내 손이 가는 대로 써 볼랍니다.

당신이 없는 지금은

이제 당신을 떠나보낸 지 3개월이 지났네요.

당신과의 이별 후 너무도 담담한 나의 모습에 나 자신도 종종 놀랍니다. 아무 일 없듯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으니 당신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까지 들지요. 이별 후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기억은 더욱 희미해져 가겠지요. 그런데 이것은 왜 인지요? 떨어진 노오란 은행잎에도, 유유히 흘러가는 가을 강 물결에도 당신의 얼굴이 보이니 말이지요. 차를 운전해가다가 순간 울컥하는 무언가에 눈가 이슬이 맺히는 일이 잦아지니 말이지요.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다면 내 마음을 전했어야 했다는 후회를 합니다. 고백을 하고 당신과 나의 관계가 가시적인 진전을 이루었다면 지금의 아픔이 덜해졌을까요? 그러나 누가 이렇게 빠른 이별이 올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시간이 되면 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결국 영영 전하지 못하고 말았네요. 그러나 그간의 나의 행동을 통해 당신은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을 이미 알아채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나기처럼 왔다 간 인연

​당신을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지요.

민소매의 검은 원피스를 입은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젊은 여자의 나이를 잘 짐작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당신의 싱그러운 모습에 20대 후반 정도로 생각했었지요. 그만큼 당신은 생기가 넘쳤고,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당당함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지요. 나의 마음은 이미 당신에게 어느 정도 기울고 있었습니다.

​이후 당신과의 수업은 늘 기다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에겐 일이 아니라 데이트에 가까웠으니까요.

우리의 언어와 역사를 제대로 배우려는 당신의 마음이 곱게 느껴져 더욱 잘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당신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당신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내가 거기에 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많이 행복했었습니다. 특히 지난 겨울! 당신이 식중독으로 고생할 때에는 당신의 아픈 모습조차 예뻐 보였습니다. 내 품에 안긴 아기를 보며 사람들이 “애기가 너무 예뻐요.”라며 이구동성으로 얘기해 줄 때에는 내가 당신 아기의 아빠가 되는 짧은 상상을 하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은 꿈속의 한 장면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을까요?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늘 당신의 마음, 당신의 일상이 궁금했고, 당신의 건강에 마음이 쓰였고, 당신이 얼굴이 보고 싶었던 건 사실입니다.

당신은 비와 함께

일이 있기 이틀 전

당신이 나에게 했던 말이 자꾸 나를 짓누르곤 합니다.

“선생님, 저희만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물론 다른 상황에서 다른 의미로 한 말일 테지만

결국 그 말처럼 되어 버렸지 뭡니까?

내가 당신을 떠난 것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나를 두고 먼 길을 간 것일까요?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 나는 요즘 방황합니다.

‘과연 내가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고 말이지요.

그대여! 부디

A!

다시는 당신에게 편지를 띄울 일은 없을 것이지만

이것으로는 좀 부족한 듯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살아가다

문득 당신이 떠오르면 당신을 소재로

글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기쁘게 읽어 주세요.

이제 당신과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것 같군요.

​너무나 열심히

살아내려던 당신!

그곳에서는 좀 내려놓고 선선히 살아가길 바랍니다.

​비와 함께 왔다가

비를 안고 간 당신!

​나와의 짧은 인연은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생각해 주면 그저 고마울 것입니다.

그대여! 그러면

부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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