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민감한 얘기를 해 볼까 한다.
간혹 종교인들과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을 벌일 때가 있다. 여기에서 종교인이란 대체적으로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앞으로 다룰 내용은 다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을 피력한 것일 뿐이니, 가볍게 읽어 주시길,…
종교(宗敎)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 세상의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무엇을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인간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그 무엇, 바로 인생의 궁극적 의미나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과 진실 등일 것이다. 원시 시대부터 진실을 알고자 했던 노력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 종교적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의 내용이라는 것이 단순하게 증명이 되는 게 아니라서 여러 논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의식이나 행위를 함에 있어서 신이란 존재를 끌어들인다. 그러다 보니 종교와 신앙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무신론자도 존재하거니와 그들 또한 종교적 행위나 가르침을 갈구할 수도 있는 만큼 종교와 신앙은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은 가치 있는 것인가!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주로 신에 대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의 영생을 그리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종교에 심취하냐 하면 바로 영생이라는 절체절명의 화두에 대해 모종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종교에서는 신을 믿느냐 아니냐에 따라 영생을 약속받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특정 종교에 귀의 하는 순간 우리는 신에 대한 믿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된다.
사실 믿음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누군가에게 강요할 사안의 것이 아니다. 개인적 믿음은 매우 소박한 것이어야 한다. 믿음이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거나 집단적 형태를 띨 때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집단의 이익이나 신념에 맞게 맹목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종교인들은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믿음 체계를 만들어 놓고 신자들에게 한 치의 예외도 없는 믿음을 강요하고 있다.
믿는 자는 앎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소박하고 개인적인 믿음은 매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믿음은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앎에 대한 치열한 노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알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틀린 말이다. 아는 것은 앎 그 자체일 뿐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앎 이전에 행하는 미지에 대한 심정적 접근이기에 알고 나면 굳이 믿음을 끌어다 놓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믿음을 가진 자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앎에 대한 치열한 노력이다.
앎에 대한 각고의 노력 없이 경전에 쓰여진 글귀나 그 글귀를 해석해 주는 누군가의 입김에 따라 쉽게 믿음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게으른 믿음이며 이러한 믿음은 다분히 맹목화 될 여지가 다분하다. 믿음은 앎에 대한 치열한 노력을 가져올 때만 가치가 있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 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은 끊임없는 질문, 좋게 말하면 지적 탐구심일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특정 종교에 귀의 하는 순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믿음의 노예가 된다. 주체적이어야 할 믿음이 종속적이고 거짓된 믿음으로 점철되기 쉽다. 주관적이고 소박해야 할 믿음이 보편적이고 거대한 믿음 체계에 압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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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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